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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을까

얼마 전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살짝 남아 근처 서점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본인들을 독립 서점의 직원이라고 소개하신 분들이 저에게 도서 유튜브에 대한 질문과 함께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책을 더 많이 읽을까” 조사하고 있다고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아마 이어폰을 안 끼고 있는 몇 안 되는 혼자 있던 사람이라 선택하신 것 같지만 그분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저는 적절한 조사 대상이 아니었는데, 저는 도서 유튜브라고는 아예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분들의 질문에 적당히 답변하고 난 뒤, 다시 곱씹어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더 많이 책을 읽게 만들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독서는 취미 생활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라는 재화는 모두에게 한정적이고 당연히 취미에 쓸 수 있는 시간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한정된 시간을 놓고 다양한 것들, 운동/SNS/유튜브 등이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 경쟁에서 독서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쟁 상대들이 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투입한 시간에 대한 대가로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독서의 효능”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식당, 예를 들어 장어구이 집에 갔을 때 동의보감 내용과 함께 벽면에 붙어있는 “장어의 효능”처럼 공허한 외침같이 보일 뿐입니다.

어쨌든 끊임없이 푸시 알림을 보내는 앱과 같은 상대와 한정된 시간을 놓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만 하기에 책 그리고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여러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살펴보면 다양한 문구, 어떤 유튜버/유명인의 추천사와 함께 책을 어필하기도 하고, 표지 디자인을 꾸며 책을 “갖고 싶게” 만듭니다. 어떤 멋들어진 책은 양장본 표지에 단 한 글자의 한글도 적혀 있지 않았는데, 이를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책을 읽는 것과는 무관하게 매출을 위해 갖고 싶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까요?

책을 갖고 싶게 만드는 이런 전략들이 무색하게도 한국의 독서 인구는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1년에는 한국 인구의 절반이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소리를 수동적으로 들을 수 있는 영상 등의 매체와 달리 독서를 위해서는 어쨌든 능동적으로 직접 활자를 읽어야 하니 일정 수준 이상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집중력의 총량에는 제한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 직장 동료분은 이를 RPG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의 “마나”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일과 중에 소진된 마나를 갖고 평일 저녁 혹은 주말에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워서 숏폼이나 유튜브 영상 정도만 몇 편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잠자리에 드는 것은 더 이상 에너지를 쓸 수도 없고 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웹소설 시장은 20년에서 22년 동안 두 배로 성장한 이래로 계속해서 커지고 있으니 그렇다고 사람들이 더 이상 텍스트/활자를 읽지 않는 것은 아닌 듯해 보입니다. 웹소설은 일반적인 독서와 다르게 많은 마나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가 개개인의 마나를 남겨둘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주 4일제 혹은 하루 4시간 근무 등과 같이 일정량 이상의 마나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 사람들은 남아도는 마나로 책을 읽게 되지 않을까요? 권태로움으로 가득 찬 사회를 만든다면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지 않을까요? 시간이 남아돌아 유튜브도 재미없고, SNS도 다 봤다면 사람들이 책을 집어들고 한 글자씩 읽지 않을까요?

이런 일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요원해 보이니 아마 독서 인구는 점점 더 줄어들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책을 읽는 것은 일견 비효율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권의 책을 직접 읽는 대신 유튜브의 요약본을 보는 것으로 대신할지 모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필름 카메라와 같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독서가 “감성”을 느끼고 싶은 소수만이 즐기는 취미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서점에서 들은 질문 하나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더 많이 책을 읽게 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 독립 서점 직원분들은 정답을 찾았을까요?